일화 기억과 관련된 기억상실증은 크게 역행성 기억상실과 순행성 기억상실로 구분된다. 전자는 뇌 손상 이전에 획득한 정보의 손실을 말하며, 후자는 새로운 일화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기억상실증 환자의 경우 외현 기억에는 심한 손상을 보이지만 암묵 기억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암묵 기억은 이전 경험에 대한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인출 노력 없이 인지적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기억을 말한다. 주로 절차 기억이 필요한 지각-운동 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역행성 기억상실증 환자는 자전적 기억이 손상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자신이 운전이나 골프를 할 수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 운전과 골프를 하였을 때 이전 경험 수준의 수행을 보인다. 반면 순행성 기억상실증의 경우 새로운 기억을 형성할 수 없으므로, 운동 기술 과제를 받을 때마다 매번 과제 수행과 관련된 규칙 설명을 들어야 할 정도로 외현 기억의 문제가 심각하다. 비록 동일한 과제의 반복이지만 환자에게는 늘 새로운 과제이고 처음 들어보는 규칙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적 자각은 하지 못한 채 과제 수행 정도만 지속적으로 향상된다.
기억상실증 환자의 손상되지 않는 암묵 기억에 대한 또 다른 예는 점화 효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점화(priming)란 동일한 자극이나 연합이 되는 자극의 사전 노출로 인해 자극의 제시 여부에 대한 의식적 자각 없이 나타나는 반응의 촉진 현상을 말한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암묵 기억 과제에서 정상인과 동일한 정도의 점화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많은 연구에서 발견되었다. A 환자는 내측 전두엽만 제외하고 하측두엽에서 후두엽에 걸친 광범위한 대뇌피질의 손상을 입은 환자이고, B 환자는 간질 발작을 억제하기 위해 측두엽 해마 영역의 약 2cm 정도를 절제하였다. A는 외현 기억의 수행에는 결함이 없었으나 지각적 점화 과제에서는 수행이 저조했지만, B는 외현 기억 수행에는 결함이 나타났으나 지각적 점화 과제에서는 온전한 수행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외현적인 재인 기억은 내측 측두엽이 담당하고, 시지각적 점화와 같은 암묵 기억은 후두엽이 관여함을 시사한다.
아동기 기억이 사라지는 이유
5세 이전 아동 초기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기억해 내지 못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아동기 기억상실(childhood amnesia)이라고 한다. 아동기 기억상실이 발생하는 이유는 신경 생리학적으로 보면 아동기에는 뇌의 발달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으며 초기 아동기에는 언어를 통해 경험을 부호화하는 언어능력의 부재로, 혹은 경험을 연합하거나 조직화할 사전 지식이나 도식이 발달하지 못하여 부호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아동기에는 의미적 연합을 풍성하게 하는 정교화와 같은 부호화 전략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호화가 되더라도 정교화된 기억 표상을 구성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아동기에 경험을 부호화했던 내용, 구조, 맥락 등이 성인 시기의 인출 맥락이나 구조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출 실패(retrieval failure)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참고 : 인지심리학 / 학지사)
댓글